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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분야

흑사병이 창궐한 유럽사회

안녕하세요!! 평생 행복 하고픈 콘텐츠 마케터 입니다.

오늘은 해피캠퍼스에서 발췌한 “흑사병이 창궐한 유럽사회” 내용을 정리하여 알려드립니다.

목차

Ⅰ. 서론
Ⅱ. 흑사병 개요
Ⅲ. 흑사병과 도시의 대응
Ⅳ. 흑사병과 사회상
Ⅴ. 흑사병이 교회에 미친 영향
Ⅵ.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일부

Ⅰ. 서론
2020년 5월 1일 기준 현재 대한민국은 경제활동 외에 외출을 자제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 캠페인을 시행 중이다. 전염성이 매우 높은 COVID-19 바이러스 감염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온라인을 통해 비대면 강의를 시행하는 여러 대학들과 마스크를 필수 착용하는 시민들에서 나아가 정부의 이러한 노력을 통해 한국의 금일 확진자는 한 달 전 101명이었던 4월1일에 비해 훨씬 낮은 9명으로 줄어들었다. 이 때문에 5월 5일 이후로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완화하여 일상으로 돌아오되 서로의 거리를 최소화하는 생활 속 거리 두기로 전환할 것을 토의 중이다. 이러한 팬데믹 쇼크는 COVID-19 외에도 신종플루, 신종독감, 스페인 독감 등 최근에도 많이 일어났고, 인류는 이를 이겨냈다. 수준 높은 국민의식과 의료 서비스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서비스가 없었던 시절의 팬데믹 쇼크는 어땠을까. 이는 2차 대역병으로도 불리는 14세기 유럽의 ‘흑사병’ 페스트를 통해 알 수 있다.

Ⅱ. 흑사병 개요
유럽은 10세기부터 14세기 초반까지 온도가 따뜻해지고 경작지가 확대되어 인구가 크게 증가했다. 이전에는 농사를 지을 수 없던 숲들을 개간해 농지로 활용하고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도시도 늘어났다. 하지만 1300년부터 흑사병이 창궐하기 시작한 1347년까지 여러 번 흉년이 들었고 늘어난 인구를 감당할 식량을 확보하지 못해 사람들은 기근으로 사망하거나 굶주리며 질병에 아주 취약한 상태가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흑사병이 발생하게 된 원인으로 크게 두 가지 설이 존재하는데 가장 유명한 첫 번째 설은 크림반도의 제노바 식민도시 ‘카파’를 포위한 몽골의 킵차크 군대가 진군하던 중 병사 내에 역병이 돌아 더는 전투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고, 사망한 자신의 병사들을 투석기로 성안에 쏘아 보냄으로써 도시에서도 역병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후 매우 큰 유럽 무역 망을 형성하고 있었던 제노바 상인들이 이를 피해 이동하면서 유럽 전역으로 흑사병을 퍼뜨리게 되었다.

 

참고문헌

CN세계사다큐, "역사의 수수께끼 흑사병", 2017. 3. 23, , (2020.05.01.)
박흥식, 「흑사병과 중세 말기 유럽의 인구문제」, 『서양사론』, (93권 93호, 2007), pp.5~7
박흥식, 「중세 말기 유럽의 성직자와 교회에 미친 흑사병의 영향」, 『서양사연구』, (44권 44호, 2011), pp.44~73
박흥식, 「흑사병은 도시 피렌체를 어떻게 바꾸었는가?」, 『서양사론』, (130권 130호, 2016), pp.101~104
김병용, 「중세 말엽 유럽의 흑사병과 사회적 변화」, 『대구사학』 (88권, 2007), p.8
"흑사병", 『세상의 모든 지식』, 서해문집(2007)
"다음주 '사회적 거리두기' 풀리나…3일 생활방역 전환 논의", 『한국 경제』, 2020.05.01,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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